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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byterian News Service

하나됨은 우리의 소명이다

통합위원회의 빌 텅 목사는 장로교 신학이 통합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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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 Bill Teng
빌 텅 목사는 통합위원회를 섬기고 있다. (사진: 샘 카딘, 미디어프로스 프로덕션)

March 26, 2026

빌 텅 목사, 통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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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로서 통합위원회를 섬긴 경험은 특권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낮추는 일이었다. 미국장로교는 2022년 제225회 총회의 결의를 통해 통합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소수의 사역 장로와 교역 장로들에게 중요한 과제를 맡겼다. 교단 내 나누어진 구조를 바꾸어 우리 공동의 삶을 더욱 통합적으로 조직할 방식을 구상하는 일이었다. 이 과제는 여러 면에서 기술적인 성격을 지녔다. 교회 조직 운영, 예산, 기관 간 조율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실무적 사안 아래에는 더 깊은 질문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았다. 공동의 권한, 신학적 다양성, 지역 교회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교회에서 ‘하나됨’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경험은 46년 목회 사역 가운데 가장 도전이 된 동시에, 영적으로 성장하게 해준 일 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 가장 많은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 경험이기도 했다. 교회 운영체제, 신학, 제도 구조에 관한 수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문제는 결국 더 깊은 것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차이를 얼마나 수용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위원회 논의는 미국장로교가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분산되어 있었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다. 구 총회 사무국과 구 선교국 안에서는 여러 기관과 위원회, 부서들이 각기 다른 문화와 운영 방식, 우선순위를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각각은 선한 의도와 의미 있는 사명을 가지고 출발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전체 구조는 때로 하나의 유기적 몸이라기보다, 느슨하게 연결된 여러 부분들의 집합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장로교인들에게 복잡성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교회 운영 체제는 질서와 자유의 균형에 대한 오랜 신학적 성찰의 결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의 권위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행사된다고 믿는다. 위원회, 공의회, 전권위원회는 이러한 신념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도구도 다시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인 나는 매주 회중을 섬기는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경험을 가지고 통합위원회에 참여했다.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성도들의 조용한 아픔과,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고 있는 공동체를 붙들기 위해 애쓰는 지도자들의 피로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목회적 감각은 위원회 활동에서 도움이 되기도 했고 동시에 나를 낮추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움이 된 것은 우리의 논의 뒤에 있는 인간적 의미를 잊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고, 나를 낮추게 한 것은 나 역시도 얼마나 자주 복잡성보다 명확함을, 긴장보다 합의를 더 선호하는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통합위원회는 교단의 두 기관 간 협력을 강화하고 교회가 사명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보다 명확한 구조를 모색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경청이 필요했다. 매일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는 직원들, 노회와 대회 전반의 지도자들, 그리고 각자의 기대와 우려를 가지고 논의에 참여한 위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논의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구조만으로는 하나됨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조직도는 바뀔 수 있고, 책임 구조는 다시 그려질 수 있으며, 보고 체계도 단순화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됨은 행정적 설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에서 비롯된다.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하나됨이 동일성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렵다. 우리는 실제 상황에서 다리를 놓기보다 선을 긋는 데 더 익숙하다. 누가 ‘안에’ 있고 누가 ‘밖에’ 있는지,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개혁교회 전통은 우리를 더 풍성한 공동체로 부른다. 그것은 서로 같은 생각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공동의 헌신과 언약적 삶으로 묶인 공동체다.

나는 교회의 하나됨이 복음 자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신약성경에서 하나됨은 동일성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로 묘사된다. 사도 바울은 몸은 하나지만 지체는 많다고 말한다. 이 성경적 비전은 장로교 운영 체제를 항상 이끌어 왔으며, 우리의 제도가 이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할 때에도 여전히 기준이 되어 왔다.

이러한 하나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직하게 말할 용기, 그리고 너그럽게 들을 용기다. 오해받을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사람이 부족할 때 은혜를 베푸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확신을 깊이 붙들되 방어적으로 되지 않아야 하며, 진리는 대화를 통해 위협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한다. 분열된 사회 속에서 이것은 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역설적인 증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위원회의 논의는 자주 하나됨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기초로 돌아갔다. 우리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구조가 사명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명을 섬기게 할 수 있을까? 거버넌스가 협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교단 본부의 구조가 섬겨야 할 각 교회와 공의회에 대해 책임을 다하도록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대화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사역과 자신이 속한 기관을 깊이 아낀다. 변화에 대한 논의는 교회를 강화하려는 의도일지라도 개인적인 문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통합위원회 활동에서 가장 고무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대체로 상호 존중의 태도가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과 사역 환경을 가진 위원들이었지만, 교회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지 찾고자 하는 공통된 열망이 있었다.

통합위원회는 또한 우리의 구조가 이 사역을 돕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장로교 운영 체제는 선물이다. 그것은 공동 분별, 책임성, 그리고 교회와 지역 간 연결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때로는 관계라는 더 어려운 과제를 회피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잘 설계된 제도라 하더라도 서로 사랑하는 영적 훈련을 대신할 수는 없다. 특히 그 사랑이 시험받을 때 더욱 그렇다.

장로교 전통은 이 사역을 위한 놀라운 틀을 제공한다. 당회, 노회, 대회, 총회로 이어지는 공의회는 어느 한 목소리가 지배하지 않도록 하고, 전체 공동체의 지혜가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할 때, 분별은 위계적으로가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다른 제도들과 마찬가지로, 장로교 운영체제 역시 이를 이끌어가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 겸손, 인내, 경청하려는 태도를 대신할 수 있는 구조는 없다.

이제 통합위원회의 사역이 마무리되어 가고, 교회가 그 권고를 성찰하는 이 시점에서 제도 개혁은 더 큰 소명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더 깊은 과제는 영적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서로를 신뢰하고, 권한을 나누며, 정직하게 말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사명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결국 하나됨은 교회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가 선물로 받아, 신실하게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더 깊은 현실 인식과 더 깊은 희망을 함께 지니게 되었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분열의 방식으로 돌아가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머물며,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차이보다 크다는 사실을 신뢰할 때 무엇이 가능한지도 보았다.

앞으로 교회가 신실한 증언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선언문이나 구조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됨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 곧 경청, 회개, 인내, 사랑에 대한 새로운 헌신이 필요하다. 이것들은 전략이 아니라 영적 훈련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조용하고 일상적인 작업이다.

통합위원회에서의 경험이 교단의 미래에 대한 모든 질문에 답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됨을 향해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은 더욱 깊어졌다. 그것이 쉽거나 효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 안에서 다름을 품는 공동체로 부름받았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화려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그러나 거룩한 일이다.

빌 텅 목사는 통합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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