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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byterian News Service

북한 김씨 왕조의 종교적 뿌리

북한 역사에 관한 획기적인 저서인 조나단 쳉의 <한국의 메시아>는 마펫이라는 한 장로교 선교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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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far left is a portrait photograph of Samuel Moffett; to his right is the cover of Jonathan Cheng&#039;s book KOREAN MESSIAH; at the far right is a group of people gathered in front of a home in Pyongyang.
사무엘 A. 마펫, 조나단 쳉의 <한국의 메시아> 표지, 1920년 평양서노회 모임.

June 9, 2026

맥키나 브리튼, 장로교 역사협회

Presbyterian News Service

2013년, <월스트리트 저널>의 서울 지국장으로 자리를 잡아갈 즈음, 조나단 쳉은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후 10년 동안 그의 삶과 연구를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그 질문은 바로 "북한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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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from Pyongyang Mission picture book, ca. 1901. Pearl Digital Collections. Top: Men's summer class in front of building. Bottom: Academy building in Pyongyang.
1901년경 평양 선교 사진첩 속 사진. (펄 디지털 컬렉션) 위: 건물 앞 남성 여름 수업. 아래쪽: 평양에 있는 학원 건물.

수백 시간에 걸친 조사하고, 10년에 걸쳐 이야기와 이름들과 세부적인 사실들을 수집한 끝에, 쳉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려 768쪽에 달하는 책으로 말이다. 4월 14일에 출간된 그의 저서 <한국의 메시야>는 19세기 장로교 선교사와, 훗날 북한의 '신왕(god-king)'으로 성장한 젊은 김일성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는 실타래를 선명히 밝혀낸다.   <한국의 메시아>는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로부터 별점 리뷰에서 "종교와 정치가 서로 얽혀 가는 과정에 대한 매혹적인 기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펼쳐진 장로교의 사역과 북한의 창건자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개인숭배 체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조명한다. 

쳉은 장로교 역사협회 아카이브의 도움을 받아 이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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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to Korea--a group photo in front of a home. Samuel Moffett is circled in the middle--he arrived just three years earlier.
한국 선교사, 단체 사진. 1893. (펄 디지털 컬렉션) 사무엘 A. 마펫은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는데, 그는 3년 전인 26세 생일에 도착했다;

"한국과 기독교를 생각할 때, 장로교 전통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장로교회와 한반도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쳉은 5월 초 장로교 역사협회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그는 <한국의 메시야> 홍보를 위한 5주간의 일정 중 마지막 주를 토론토에서 보내고 있었다. 투어가 끝나면 그는 <월 스트리트 저널> 중국 지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베이징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점은 남한이 한국 기독교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대부분이 남한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북쪽에 있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오늘날 북한의 수도인 평양 주변에 있었습니다.”

<한국의 메시야>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시작과 끝에 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일성은 제2막의 중심 인물이다. 제1막에서 소개되는 인물은 대중에게 훨씬 덜 알려진 인물인 평양의 장로교 선교사, 새뮤얼 A. 마펫(Samuel A. Moffett) 목사다. 쳉은 마펫의 이야기를 접한 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 역사협회 아카이브와 프린스턴 신학교의 라이트 도서관 두 곳에 마펫 본인이 직접 작성한 수많은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의 메시야>를 쓰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빠져들면서 아카이브가 드러낸 사실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라고 쳉은 말했다. "장로교 역사협회와 프린스턴 신학교 라이트 도서관에 있는 자료의 양이 너무 방대해서 거의 파묻힐 지경이었습니다." 

마펫은 인디애나주 매디슨 출신으로,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26세가 되던 해인 1890년 1월, 장로교 선교사로 봉사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했다. 그해가 저물기 전에 그는 북쪽의 평양을 복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곧 뉴욕의 해외선교본부(Board of Foreign Missions)에 자신을 도울 인력을 보내달라고 재촉하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한반도 전체적으로는 전도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아 부산에서는 선교사들이 첫 개종자에게 세례를 주기까지 3년이 걸렸던 반면, 평양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그는 몹시 놀라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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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ies serving at the Pyongyang Station in North Korea in 1915. Moffett is circled in white.
한국 선교회 평양 지부 회원. 1915. 사무엘 A. 마펫은 흰색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다. (펄 디지털 컬렉션);

"당시 사람들은 평양을 한국에서 가장 악한 도시라고 불렀습니다"라고 쳉은 설명했다. "그래서 마펫이 그곳에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희망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주 만에 그는 뉴욕 본부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먹고 잘 시간조차 없다. 복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문 앞에 줄을 서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원군이 조금씩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마펫의 선교사 그룹은 커졌다. 그들의 자녀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 학교는 1930년대에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내인 루스 벨 그래함이 고등학교를 다녔던 곳이기도 하다. 평양 선교 부지는 지속적으로 번창하여 120에이커(약 14만 7천 평) 규모에 달하는 장로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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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Moffett stands holding the hands of two of his youngest children. His wife sits in the grass at the far left of the frame. Standing above her is another of Moffett's children; at the far right of the frame stands his son.
마펫 목사와 루시아 피쉬 마펫 여사가 아들 찰스, 사무엘, 하워드, 제임스와 함께 한국 자택 정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19. (펄 디지털 컬렉션)

쳉은 마펫뿐만 아니라 장로교 역사협회 아카이브에 기록이 보관되어 있는 베어드(Baird) 가족과 같은 다른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물에서 이러한 정보를 수집했다. 아들 리처드 H. 베어드는 저서 <한국의 윌리엄 M. 베어드: 프로필(W.M. Baird of Korea: A Profile)>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현대 선교 활동의 위대한 세기에 대한 역사가 완성되면, 한국의 평양 선교기지(Pyongyang Station)가 그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선교기지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다음과 같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평양은 그 칭호를 얻을 자격이 충분하다. 1. 평양을 중심으로 한 전 지역에서 발전한 자립 교회의 활력과 생동감, 그리고 실제 규모. 2. 이 선교 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도, 의료, 교육, 농업, 사회적 활동 등 다방면에 걸친 선교 활동의 다양성. 3. 파견된 외국인 선교사 인력의 실제 수와 선교 본부들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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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on the left is primarily text-filled, offering a description of the Pyongyang mission station at the height of its renown. On the right is a map of the mission compound.

이 기록에는 1930년 당시의 선교 기지 지도도 담겨 있었다. "선교 활동의 6분의 1 평방마일(120에이커)"이라는 제목의 이 지도에는 '평양 장로교 부지' 내부의 41개 구역이 표시되어 있으며, 가장자리에는 관련 사실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1930년 기준으로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외국인학교(지도 31번)에는 100명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었고, 숭실대학(Union Christian College, 지도 40번)에는 150명의 대학생이 재학 중이었다. 또한 그 도 전체에는 697개의 주일학교가 있었고, 학생 수는 45,000명이 넘었다. 

지도의 29번 지점에서는 마펫의 집을 볼 수 있다. "그는 단신으로 평양에 처음 파견되어 그곳에 처음 자리를 잡은 인물이었으며, 1938년 사망할 때까지 놀라울 정도로 오랜 기간 그곳을 관장했습니다"라고 쳉은 장로교 역사협회에 전했다. "따라서 거의 반 세기 동안 새뮤얼 마펫이라는 이름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알려진 평양의 기독교적 존재감과 동의어였습니다."

비록 장로교 선교 역사와 관련된 당시의 건축물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현재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며 그 중심에는 김일성 광장이 자리 잡고 있다), 쳉이 기독교적 열정이 최고조에 달했던 당시 평양의 생생한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다른 자료들이 남아 있었다. 

마펫과 베어드 같은 선교사들의 개인 소장 자료(프린스턴 신학교 라이트 도서관의 마펫 한국 컬렉션 및 펄 아카이브의 한국 선교 역사 디지털 컬렉션)와 더불어, 쳉은 북한 측의 기록 역시 활용했다. <한국의 메시야> 제2막의 중심을 이루는 김일성의 유년기와 가족사는 그가 사망하기 전 몇 년 동안 출간하기 시작한 8권짜리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다. 1인칭으로 쓰인 이 회고록은 그의 성장 과정, 특히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부모와 조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김일성이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를 배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김일성 자신의 기록 덕분"이라고 쳉은 설명했다. "그가 교회 연극에서 연기했고, 주일학교를 가르쳤으며, 새뮤얼 마펫이 설립한 미션스쿨에 다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십 대 시절에는 감리교 목사의 집에서 2년 동안 살았으며, YMCA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는 점도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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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roup photo taken in Pyongyang. The Rev. Kil Son-ju and Dr. Samuel A. Moffett are marked by arrows at the bottom of the image.
단체 사진, 평양. 화살표로 표시된 길선주 목사와 마펫 목사. 길 목사는 평양에서 가장 저명한 부흥 목회자 중 한 명이었다. (펄 디지털 컬렉션)

쳉은 김일성의 어린 시절과 가족에 대해 북한 자료가 전하는 내용과, 세기 전환기 평양에서 사무엘 모펫의 복음화 사역을 기록한 장로교 아카이브의 자료를 함께 엮어,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북한 도시의 생생한 초상을 구성해냈다.

장로교 역사협회 아카이브에서 보낸 수백 시간의 연구를 거쳐 145페이지에 달하는 각주를 작성한 쳉은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파고들수록 보물창고 같았습니다! 아카이브에서 발굴할 수 있는 양이 너무 많아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요. 제 작업은 단지 표면만 조금 긁어낸 것 같이 느껴집니다." 장로교 역사협회는 쳉의 책이 탄생하는 데 일조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그가 조만간 열람실로 돌아와 아카이브의 깊은 우물을 다시 한번 파고들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메시야>는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구매 가능하며, 독자들은 도서 공식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 책을 구매할 수 있다. 장로교 역사협회는 소속, 배경, 연구 성격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소장 자료 이용을 환영한다. 아카이브 탐색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펄 디지털 컬렉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직접 방문 연구를 원하는 이들은 장로교 역사협회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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