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해 동안 나는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섬기는 비 영리 기관—the Council for America’ First Freedom--의 이사회를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미국 시민으로서, 나는 다양한 신앙 공동체들을 대표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속되고 생존하는데 필수적인 적절한 방식들로 이러한 기초적인 자유가 보장되도록 우리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섬길 수 있어서 감사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모든 신앙, 민족, 혹은 교의를 지닌 사람들을 위한 평화롭고 안전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힘쓰면서 우리가 믿는바 대로 예배하기 위해 우리가 지니는 특권을 공유한 기독교인과 유대인, 그리고 모슬렘과 불교인들이었다.
기독교인인 나는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종교의 일원이라는 것에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세우고, 편견을 줄이며, 다른 신앙 전통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는 방식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평화의 왕을 예배하기 때문이다.
내가 구세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은 일들이 항상 순조롭지 않을 수 있으며, 사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두려움과 적의와 분노로 가득차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비록 우리 신앙은 우리가 다른 쪽 뺨을 돌려대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고 돌보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할 때)는 의미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또한 그 어느 것도--심지어 악한 자들의 위협과 극악한 행위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롬 8장).
성경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말씀이며,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더 이상 수용하거나 허용할 수 없는 몇몇 이야기들 및 실례들과 씨름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 노예 소유, 간음한 자들을 돌로 치는 것과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성경적 지시들이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본래 기록되었던 때에 의미했던 것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이해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우리 기독교 전통을 방패로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평화와 정반대로 행동했던 때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자주 용서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두려움과 염려와 적의의 메시지들이 우리에게 퍼부어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마도 지금이 어떤 기독교인들이 던졌던 질문--“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을 해야 할 적당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나는 정말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분이 무엇을 하시지 않을 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추측을 하지 말라고, 무지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라고, 혹은 두려움을 조장하는 선전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그룹의 사람들을 한쪽으로 매도하는 (profile) 일에 참여하지 말라. 남자들은 모두 똑같이 생각한다거나, 흑인들은 모두 똑같이 생각한다거나, 기독교인은 모든 문제에 관해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지한 것이다. 우리는 또한 거짓 증거를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오도해서는 안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나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모슬렘들과도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는 가운데 이슬람 신앙을 대표한다고 공언하는 급진주의적 악의 세력들이 뿜어내는 공포를 보았다. ISIL 혹은 ISIS라고 일컬어지는Daesh는 악의 세력이다.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단순히 코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KKK단--공포를 조장하고, 심지어 그들의 상징으로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는 자칭 그룹—이 성경의 진리를 대표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잘못되었다.
나는 테러 공격이 벌어지고 있는 이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일어나서 우리의 목소리를 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향해 증오 및 악의로 가득 차게 만든 것의 근원으로 내려가 보자. 미국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를 향한 엄청난 분노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름으로서, 우리가 세상에 표출되고 있는 분노의 일부를 잦아들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도래하는 선거뿐만 아니라, 우리 지역 및 나라의 정치적 결정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적극적인 자세를 띄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기초하여 결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무지 속에서, 그리고 말과 행동의 결과를 인식하지 못한 채 기능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 나라들과 사회들이 어떻게 증오 및 두려움의 자리에서 기능하기로 선택했는지에 대한 많은 역사적 실례들이 있다. 그러한 접근법들은 수없이 실패해 왔으며, 그것으로 인해 종종 독재자들 및 악한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이 벌어진 후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신앙에 따라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 단순히 교회뜰만 밟고 조용히 왔다갔다 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미국 장로교인인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교단이 우리 사회에 맞서서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힘써온 역사를 갖고 있는 교단이라는 것이다. 평화, 정의, 긍휼, 그리고 은혜가 우리 선조들의 충성스러운 삶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란다!
Rada Heath, 미국 장로교 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