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시편 34:8)
지도자는 맛본다. 난 각 가정에서 각기 음식을 가져와 교회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시애틀의 일본 장로교회에서 성장했던 나는 스시와 테리야키 치킨으로 가득찬 식탁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난 어머니가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에 가져갈 음식을 만드셨고 그 음식을 가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입에는 침이 가득했던 생각이 난다. 신경 과학자에 의하면 우리의 미각과 후각이 우리의 기억을 가장 강렬하게 끌어낸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많이 드셨다. 복음서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매 순간마다 앉아서 음식을 드셨다. 많은 사람들을 먹이던 기적 사건에서부터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사건, 최후의 만찬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삶의 많은 부분들이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모든 곳으로 걸어다니신 것이 다행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쉽게 300 파운드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신학자 프레드 크래닥은 말했다. 우리의 유대인 및 무슬림 형제자매들에게 있어 다른 이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우리 기독교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과 함께 앉아 음식에 대해 감사 드리고 함께 먹는 것은 아름답고 강력한 일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우리는 음식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순간을 매우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난 세계 성만찬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날 전 세계에 걸쳐 교단의 모든 성도들은 주의 만찬에 참여했다. 그리스도의 몸의 접시가 내게 전해졌을 때 난 놀라고 기뻤다. 거기에는 흰 빵, 검은 빵, 또띠야, 난, 한국 떡이 모여 있었다. 난 떡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그 접시를 밀러에게 건네주었다. 밀러는 그때 일곱 살이었는데, 밀러 역시 접시에 각기 다른 빵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라워했다. 처음에 밀러는 그 접시를 엄마에게 넘겼다. 난 이것이 그에게는 너무 낯선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밀러는 엄마에게 그 접시를 잡으라고 하더니 손을 내밀어 각 빵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예배 시간 내내 그 빵들을 먹었다. 예배가 끝나고나서 가장 맛있었던 것이 난이라고 했다. 각기 다른 빵, 또띠야, 난, 떡을 맛보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다.
지도자는 맛본다. 우리는 함께 앉아 사랑하는 이들, 또 낯선 이들과 함께 빵을 나눠 먹는다. 우리는 모두 식탁의 자리에 초청을 받고 또 다른 이들을 초청한다. 함께 먹으면서 우리는 성스럽고 거룩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된다.
묵상:
- 언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까?
- 언제 식탁의 자리에 초청을 받았습니까?
- 언제 다른 이들을 식탁의 자리에 초청했습니까?
목사인 로저 니시오카 박사는 캔사스주 프레리 빌리지에 위치한 빌리지 장로교회에서 수석 부목사 및 장년 신앙교육 사역 디렉터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는 빌리지 교회의 사역에 합류하기 전, 조지아주 디케이터에 위치한 컬럼비아 신학교에서 기독교 교육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 글은 "지도자 양성의 해: 사역 장로와 집사에 투자하기"의 일환으로서, 미국장로교 지도자 양성에 초점을 맞춘 12회 시리즈의 아홉번째 글이다. 추가 자료는 www.pcusa.org/leader-formation/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