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도자는 기도를 합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말한 의미를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목사의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목회 기도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십 대일 때, 형제들과 나는 아버지의 기도 시간을 재곤 했다. 어느 주일 저녁, 아버지는 6 분 이상 기도하셨고, 형은 아버지가 지금까지의 기록을 갱신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 긴 기도를 듣고 계시는 걸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면, 왜 그것을 다 말해야 하냐고요?!"라고 형이 물었다.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아시도록 기도하지 않는단다. 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도록 기도한단다." 세월이 지나, 미국 트래피스트 수도회 수사인 토마스 머튼이 자신은 하나님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고 쓴 것을 읽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가 변화되도록 기도했다. 이는 기도가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유대인 신학과 일맥상통한다. 유대인 친구들에게 있어, 기도는 더 낫게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스스로가 더욱더 예수와 같이 되는 방법으로 기도를 이해하고 나니, 나는 기도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그러나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고는 여전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호흡 기도라는 생각을 접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으심으로써 사람이 생명을 얻었기에(창 2:7), 숨을 들이마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그 숨을 들이마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숨을 내쉴 때, 우리는 피조물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숨을 쉬는 것은 기도의 한 형태다. 왜냐하면 숨을 쉬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닮아가기 때문이다. 숨을 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바로 그 숨을 우리 몸 안에 들이마신다.
좋은 지도자는 기도한다. 기도의 패턴을 만드는 것이 좋다. 많은 친구와 가족은 내가 "하나님의 자비를 들이마시고", "하나님의 자비를 세상에 내쉬는" 것으로 매일 기도 시간을 시작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 후 자리에 앉아, 나는 촛불을 켜고 성령의 임재를 인식한다. 그리고 노트에 적은 목록을 따라 기도한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성령께서 내게 이끌어주신 사람들의 이름과 상황을 적어두면 도움이 된다. 그 이름이나 상황을 크게 말하면서 기도하면 좋다. 때로는 구체적인 것을 간구한다. 어느 때는 단순히 이름만 언급한다. 여기엔 어떤 마술도 없다. 내가 그들에 대해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들에게 더 신경을 쓰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머튼이 말한 것처럼, 이름이나 상황을 말하면, 내가 그 사람이나 상황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내가 그들과 함께 살고, 함께 휴식을 취하게 하신다. 난 항상 감사로 기도를 마친다. 내가 하나님께 더 마음을 맞추면, 더 신실한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지도자는 기도한다.
목사인 로저 니시오카 박사는 캔자스주 프레어리 빌리지에 위치한 빌리지 장로교회에서 수석 부목사 및 장년 신앙교육 사역 디렉터로 섬기고 있다. 빌리지 교회의 사역팀에 합류하기 전에는 조지아주 디케이터에 위치한 컬럼비아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교육학 교수로 섬겼다.
이 글은 "지도자 양성의 해: 사역 장로와 집사에 투자하기"의 일환으로서, 미국장로교 지도자 양성에 초점을 맞춘 12회 시리즈의 첫 번째 글이다. 추가 자료는 www.pcusa.org/leader-formation/에서 이용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