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웃들을 축하해 주라
내 손자는 아직 어려서 “나의 그리고 내 것”(My and mine)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는 또한 그가 먹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반드시 나누어 먹으려 한다. 골드피시 크래커를 건네주는 끈적끈적한 손을 개의치 않는다면, 당신은 매우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배우려는 성인을 볼 수 있다. 한 율법사가 일어나서 “영생을 얻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한다.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물으시며, 그 사람은 정답을 말한다. 그 다음에 큰 질문이 이어진다.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예수님은 이 순간을 교육의 순간으로 바라보셨다. 이 순간은 단순히 정보를 넘어 변화를 담고 있는 순간이었다. 그때에 예수님은 문자적인 대답만을 주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 율법사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것으로 알고 있는 이 이야기에는 자행된 범죄, 두 명의 냉정한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있음직하지 않을만큼 긍휼이 풍성한 영웅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그 율법사는 범죄 이야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것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종교 지도자들을 놀리는 것은 그곳에 모인 군중들에게 호감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분명히 그와 유사한 냉대를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영웅의 행위를 통해 그들 모두를 놀라게 하신다. 이 영웅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편견에 대해 알고 있으며 또한 믿고 있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교육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특별히 당신이 어떤 사실 (fact)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영적인 교육은 더욱 그렇다. 그 사실은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는 묘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 작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 당신의 모든 이웃들을 축하해 주는 삶을 살기 바란다.
죤 칼빈은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모든 축복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금하신 것과 같아서 우리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분배되어야 한다.”
그러한 축복들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받고, 엄청난 은혜로 용서를 받으며, 우리에게 합당한 삶을 살도록 준비되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당신의 골드피시 크래커들을 항상 나누어 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