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로교의 넓이와 깊이를 경험하기
지난 달은 미국 장로교와 우리 관계들의 폭넓은 범위를 보고 경험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그 귀한 경험은 7월 4일 몬트리에트 (Montreat) 퍼레이드에서 차에 타고 행진하는 즐거운 시간과 함께 시작되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수백 명의 훌륭한 장로교인들이 함께 모여 우리 나라의 독립을 기념하는 것을 보았고, 총회장의 역할을 위해 교회가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백악관에 다녀왔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연방 정부의 직원들을 성적 동향이나 그와 유사한 것에 기초하여 차별하는 것을 금하는 법안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하는 것을 목격했다. 여러 하이라이트들 중의 하나는 미국 장로교가 정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것에 대해 여러 많은 사람들이 감사를 표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우리가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총회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 있으며, 우리가 사람들—이들이 어떤 편에 서있는지에 관계없이--에게 제한을 가하기보다 그들이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살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사를 표현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평화 구축과 정의에 대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의 진지한 열망 때문에 미국 장로교에 가입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나는 매우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렇게 폭넓은 반응을 보여준 것으로 인해 깜짝 놀랐다.
다음으로 우리는 뉴욕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나는 몇 명의 뛰어난 유대 랍비들과, 그와 동등하게 뛰어난 장로교 목사들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이 모임의 목적은 그곳에 모인 자들--지난 수년 동안 서로 헌신적으로 동역해 온 사람들--의 염려 사항들을 듣기 위함이었다. 내 메일과 대화를 통해 표명했듯이, 매우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서의 전쟁을 지지해 주는 사업을 하는 특정한 회사들로부터 투자를 철수하자는 우리의 결의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 그곳에 모인 자들은 장로교 정치의 간단한 개요를 주의 깊게 경청했으며 (총회장이 투표에 영향을 미치거나 변화를 줄 수 있는 힘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들이 알 수 있도록), 우리 교회가 어떻게 분별하여 결정을 심의했는지에 대해 들을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따르도록 부름 받았다고 느낀 길을 놓고 우리 교회가 양분되어졌다는 것에 대해 다시 듣게 되었다. 비록 그들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것이 결과를 변화시키지 못하며, 그들도 이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과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 전쟁의 복잡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정하고 정직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대화를 위한 그들의 개방성과 자발성에 매우 감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역사적으로 정의와 개방성을 위한 우리의 입장이 그들이 고마워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내가 몬트리에트에 있는 나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명한 팔레스타인 작가이며 저널리스티이고, 또한 CNN과 다른 뉴스 프로그램들에 자주 출현하는 Ali Abunimah를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제안 받았다. 알리는 퀘이커 교도들의 모임에서 강연하고, 저자 싸인회를 열기 위해 Asheville에 있었다. 알리는 장로교인들이 평화와 정의를 위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청원에 반응하여 보내 준 도움에 대해 그들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었다. 그는 우리가 최상의 방법을 놓고 양분된 교회라는 것을 이해했으며,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정의를 위한 우리의 역사적 입장이 온 세상에서 칭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나의 본 노회인 Western North Carolina노회에 방문해서 노회원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개회 예배에서 설교를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노회원들은 매우 따듯하고 은혜로웠다. 총회 총대들이 보고를 했을 때, 그곳에 모인 나머지 회원들은 총대들의 지혜와 지식과 유능함과 신실함과 헌신적 태도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단지 인상적이었다는 말로는 그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곳으로부터 나는 7월 말부터 8월 초반까지 미국 장로교 내셔널 다문화 교회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Ft. Worth에 갔다. 나이가 든 축에 속하는 백인 남성인 나는 우리 교회의 얼굴이 변화되고 있는 모습들을 똑똑히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곳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한 교단의 회원들이었지만, 서로 다른 연령과 인종과 문화와 성별 및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언어”로 그렇게 하라는 초청을 자주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울려퍼지고 있는 수많은 다른 언어들 속에서 나의 영어가 소수의 언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다양성 속의 일치에 의해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토대로 하여 모인 그런 장소에 있을 수 있는 특권에 의해 감격스러웠다.
미국 장로교인들인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우리로 하여금 서로 일치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들은 사랑이 충만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메시지의 정황 속에서 항상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